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hr-oreum.net/post.jpg|width=100%]]}}}|| || 피해자 한종선이 당시를 증언하며 그린 그림에 채색하고 신문기사와 합성한 이미지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047/0002020652|#]] || [[1975년]]부터 [[1987년]]까지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부산시, 더 나아가 정권에 의해 일어난 인권유린, [[국가폭력]], '''[[학살]]''' 사건.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악의 학살 사건 중 하나로 꼽히며 1987년 말까지 수용자 학대가 자행되었다. 특히 1980년대에는 [[전두환 정권]]의 묵인, 방조 혹은 협력 하에 [[1986 서울 아시안 게임]]과 [[1988 서울 올림픽]] 개최를 전후로 [[장애인]], 부랑자 단속이 극심했다.[* 자세한 내용은 [[1988 서울 올림픽]] 문서 참고.] 약 12년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피해자 수는 최소 513명([[박인근]]의 주장)으로 알려졌다. 그러나 시체는 [[암매장]] 또는 근처 [[카데바|의과대학에 해부용으로 돈을 받고 팔았기 때문]]에 정확히 몇 명이 죽었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다. 2022년 8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라 공식 사망자는 657명으로 늘었다. 수천 명의 원생들 중 70%가 일반인이었으며 형제복지원 직원들에 의해 납치, 구금되었다. 당시 납치에 [[부산시청]]과 부산 경찰이 적극 협조하였기 때문에 원생들은 탈출해도 공권력에 의해 다시 잡혀들어갔다. 게다가 2022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[[전두환]]도 뒷배를 든든히 책임졌으며 따라서 피해자들은 한 번 붙잡힌 이상 외부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웠다. 원장 및 관리자급 직원 4명이 체포되어 특수감금죄 등의 혐의로 기소됐으나 [[전두환|윗선]]의 지시로 살인죄로는 기소되지 않았다. 또 반정부 시위로 번질 것을 두려워한 전두환의 지시로 2년만에 석방되었고 원장은 2011년 사임을 전후하여 치매를 앓았다고 한다. 일각에서는 '''한국판 [[아우슈비츠]]'''[[https://m.hani.co.kr/arti/society/rights/646133.html#cb|라고 불리며]] '''대한민국 내부에서 같은 [[한민족]]이 한민족을 감금하고 인권을 유린했다는 점은 사실상 [[나치]]의 [[아우슈비츠]]나 [[소련]]의 [[굴라크|굴라그]] 등과 같다고 할 수 있다.'''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